2010. 11. 10. 13:32

사랑해요! 보물섬 귀농,귀촌 남해팸투어에서 보물찾기...

 

 

남해군의 상징물

 

남해군 로고:남해대교, 통합 브랜드:사랑해요! 보물섬, 캐릭터:해랑이

 

군조:백로Snowy Heron-우아하고 고귀하며 농민과 벗하여 친근하다.

강직하며 주체성이 강하여 근면성과 애향심이 강한 남해군민의 기질과 흡사하다.

 

군화:치자꽃Gardenia-잎은 광택이 있고 꽃은 짙은 향기가 있으며, 열매는

한약재와 천연 염료로 쓰인다. 군민의 청렴함과 향토애를 닮았다.

 

군목:비자나무Torreya Nut-목재는 특수목재로서 품위 있는 공예품에 쓰이고

열매는 한약재로 쓰인다. 유일하게 남해군에서 자생한다.

 

 

면적은 357Km2 으로 행정 구역상 1읍 9면으로 나뉜다.

인구는 49,281명(8월말 기준)이며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6개로 이루어졌다.

 

 

 

남해군의 역사에 대하여 공부를 해볼까요?.

 

선사시대

설천면 동흥마을에서 4억 7천만 년 전에 번생했던 조류석화인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가 산출되어 전기 고생대 이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창선면 해안에서는 초식성 2족 보행 용각류, 초식성 조작류 그리고 육식성 2족 보행 조각류, 익룡으로 보이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또한 사람 발자국 모양 화석, 고생물 화석, 추도 공룡발자국 화석 10여 점이 발견되어 중생대 남해군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남해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남면 평산리 지석묘군 주위에서 원석이 1/3정도 남은 구석기시대 석영제의 몸돌 1점이 채집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물은 남해에서 최초로 발견된 뗀석기로 유일한 구석기시대 유물이며 평산리 배들이들 역시 구석기시대 유물채집지로 남해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고조선 시대

고조선시대에 남해군이 있었던 한반도의 남부는 아직 국가의 체제가 성립되기 전이지만 인류의 활동은 존재하고 있었다.

남해군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인돌로 현재 6개면에서 108기가 발견되었다.

 

 

삼한시대

마한,진한, 변한의 삼환 중 변환 13개국 중 군미국(사천 곤명) 또는 낙로국(하동 악양)에 소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남해에서도 정치집단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적이나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가야시대

6가야 중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고성에 있었던 소가야에 소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소가야의 영역이 남해군에까지 미쳤을지는 알 수 없다.

 

 

신라시대

신라의 번성기까지 가야에 속해있던 남해는 562년(진흥왕 23) 이사부가 가야를 멸망시킨 후 신라에 부속되었다.

663년(문무왕 3) 2월 백제의 저항세력이 남아 있던 거열성(거창)을 함락시킨 후 거열주라 칭했으며, 685년(신문왕 5) 청주(지금의 진주)로 개편되었다.

남해군은 거열주와 진주에 연이어 속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국시대

남해군이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때는 690년(신라 신문왕 10)으로 전야산군이라는 지명을 가졌다.

남해군 최초의 지명인 전야산군은 전국 117개 군 중의 하나로 태수가 다스렸다.

전야산군은 내포현과 평서산현이라는 두 개의 영현을 거느렸다.

 

 

고려시대

고려시대 초기의 남해지명은 신라시대의 "남해군"이라는 이름 그대로 불려졌다.

현종 9년(1018)에 제대로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남해는 남해현으로 개칭되고 현령을 두었으며 2개의 속현을 거느렸다.

한편 여말 남해는 극심한 외구의 침탈로 공민왕 7년(1358)에 주민이 땅을 잃어 진주관내의 대야천 부곡으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1404년(태종 4)에 복구된 남해현은 1414년 군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ㅘ동현을 합하여 하남현으로 개칭되었다.

1414년(태종 14) 하동현이 독립하면서 진주임내 금양부곡을 남해현에 합하여 해양현이라 했다.

1417년(태종 17) 금양부곡이 진주에 다시 합병되어 남해현으로 독립되었다.

1419년(세종 원년) 진주에 속해있던 곤명(昆明)을 남해현에 병합시켜 곤남군(昆南郡)으로 삼았다가 1437년(세종 19)다시 남해현으로 독립했다.

남해현으로 복현된 후 458년간 지속되던 명칭은 1895년(고종 32) 남해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해군의 볼거리

남해군의 12경으로[제1경-금산과 보리암, 제2경-남해대교와 충렬사, 제3경-상주 은모래 beach, 제4경-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제5경-이충무공 전몰유허, 제6경-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제7경-서포 김만중유허-노도, 제8경-송정 솔바람 해변, 제9경-망운산과 희방사, 제10경-물건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제11경-호구산과 용문사, 제12경-창선대교와 삼천포대교]가 있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는 경남 남해군 남해읍 망운로9번길 12(서변리 24-1)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번호:055-860-8601, 홈페이지:http://tour.namhae.go.kr 에 접속하시면 다양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남해군 특산물은 유자청Citron Jam, 유자주Citron The Spirits, 우리밀국수Korean Wheat Noodle, 마늘Garlic, 멸치액젖Salted Sna Fermented An Chovy Liquid Extract, 남해청정미Namhae Rice Cultivated In Clean Area, 마른멸치Dried An Chovies, 젓갈Salted And Femented Fish, 화전한우Hwajeon Choice Beef, 주방용 칼 수저류Kitchen Knife Chopping Board Spoon And Chopsticks, 향류Incense Stick, 갈치회A Sliced Raw Cutlass Fish Dish, 생선회A Dish Of Sliced Raw Fish, 전복Abalone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남해에는 4개의 바래길이 있는데, 바래길은...

 

남해 어머니들은 바다를 생명으로 여겼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바다가 열리는 물때에 맞추어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이나 갯바위로 나가 해초류와 낚지, 문어, 조개들을 잡았습니다.

 

국을 끓이고, 삶아 무쳐서 반찬으로 만들고, 말려서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주고, 

그래도 남으면 시집 간 딸래미 집에 보내곤 했답니다.

 

 

대량 취득이 아닌 일용에 필요한 양만을 채취하는 작업이 "바래"입니다.

 

남해 사람의 정서와 남해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남해 바래길"은

남해의 보물을 담아내는 어머니들이 걷던 길입니다.

 

 

"남해 바래길은 남쪽바다를 몽땅 다 담고 걷는 길입니다."

"보물이 항거슥 담긴 남해 바래길로 오시다~."

"사부작 사부작 걷는 남해 바래길로 오시다~."

"남해 바래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보물을 가득 담은 남해 바래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보물섬 여행길입니다.

 

그 길에 남해 사람들의 여유와 느긋함을 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다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제1코스는 다랭이 지겟길 걷기(평산항-유구철쭉군락지-사촌해수욕장-선구 몽돌해안-

향촌 조약돌 해안-향촌 전망대-가천 다랭이 마을-(구)가천초교 소요시간:16Km, 소요시간:5시간)

 

 

제2코스로 말밥굽길 걷기(지족어촌체험마을-창선교-추섬공원-보현사-

모상개해수욕장-장포항-적량성(적량해비치마을) 소요거리:15Km, 소요시간:5시간)

 

 

제3코스는 고사리 밭길 걷기(적량성[해비치마을]공룡발자국화석-고사리밭-

동대만 갯벌-창선 방조대 갈대밭-동대만 휴게소 소요시간:14Km, 소요거리:4시간30분)

 

 

제4코스는 동대만 진지리길(동대만 휴게소-곤유마을-당항항-냉천어촌체험마을[갯벌체험]

-창선대교 차운-창선.삼천포대교 소요시간:10Km, 소요시간:3시간)

 

 

Welcome To Namhae

삶의 흔적을 보물로 간직한 남해로 가서 보물을 찾아보세요.


Posted by 영구없다